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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내린 날 감성에 젖어 찾아 든 시집<차마, 소중한 사람아>

by 청향 정안당 2020. 12. 14.

<차마, 소중한 사람아>

 

 

첫눈이 내린 날 감성에 젖어 애들 방 책장을 서성인다.

그러다 만난 시집 <차마, 소중한 사람아>라는 시집이다.

1994년 4월에 남편에게 이 시집을 선물했던 모양이다.

생일엔 가끔 시집을 선물하긴 했어도 뜬금없이 4월 어느 날 이 시집을 남편에게 선물하다니..

참 오글거린다.

개면 적어 보너스를 많이 챙겨 주었나? 라며 기억을 소환해보지만 떠오르는 기억은 없고..

지금은 절판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여러 시을 모아 그땐 몇 권의 시리즈로 출판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무튼 시집을 넘기며 시 몇 편을 옮겨 본다.

 

 

또 기다리는 편지

             -정호승-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였습니다.

날 저문 하늘에 별들은 보이지 않고

잠든 세상 밖으로 새벽달 빈 길에 뜨면

사랑과 어둠의 바닷가에 나가

저무는 섬 하나 떠올리며 울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고

새벽보다 깊은 새벽 섬 기슭에 앉아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

 

 

눈물 연가

-나혁채-

 

한 여인 앞에

산처럼 남고 싶다

 

그 여인이 마음 놓고

와 안겨 울 수도 있고, 마음 놓고

바라보며 위안도 받을 수 있는 

그런 산처럼 남고 싶다.

 

그 여인이 마음 놓고

떠날 수 있게 

이젠 아주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빙긋이 웃어 보이며,

찢긴 가슴 바위 속을 눈물로 가득히 채울 수 있는 

그런 산처럼 남아 있고 싶다.

물론 , 나도.

그 여인이 마음 놓고 

와 안겨 웃을 수 있고, 마음 놓고

바라보며 그리워할 수도 있는

 

그런 산처럼 남아 있고도 싶지만,

그것은 영 분에 넘치는 일이라

그저 한 가지, 노자 삼아 떠날 수 있게,

나 숨지면 , 눈물이나 몇 방울 보내 주지 않을까 하다가,

아니,

아예 그런 욕심까지 끊어버리고

제 타는 눈물로나 배를 띄워 떠나갈

그런 산처럼 나는 남아 있고 싶다.

다만, 그 여인이 마음 놓고 

와 안겨 울 수도 있고, 마음 놓고

바라보며 위안도 받을 수 있는

그런 산처럼 남고 싶다.

 

오직 한 여인 앞에

산처럼 남고 싶다.

 

 

갈대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나도 이젠 안다.

 

그 청초했던 시절엔 지금과는 사뭇 다른 시의 해석이었을 것을,

아니면 감성이 달랐을 거란 생각이다.

이젠 삶이란 현실을 예전의 꿈 많던 그 시절과 어찌 같을 수 있을까.

오래된 시집은 내게 더 많은 감성을 꺼내게 해서 좋다.

시집도 남편에게 선물하던 그 시절의 풋풋함으로 돌아가 오늘은 퇴근길 남편을 반가히 반겨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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