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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유서깊은 아산 공세리성당에서..

by 청향 정안당 2020. 4. 22.

유서깊은 아산 공세리 성당에서..


아산 공세리성당은 조선시대 세곡을 보관하는 공진청이 있던 자리에 빨간 벽돌로 지어진 고딕양식의 공세리 성당은 단아하지만 아름답고 우아하다.

도지정문화제 제144호이기도한 아산 공세리 성당으로 가기위해 마을로 들어서면 도로변에 야트막하게 돌로 쌓은 성벽이 걸음을 멈추게 한다.


조선시대 조세로 내었던 곡식을 저장하였던 조창인 공진청이 있던 자리이며 공세곶고지는 공진청의 처음 이름이다.
삼도해운판관비와함께 공진청의 성벽이 겨우 이곳이 조창이었음을 알려주고있다.


아산 공세리 성당은 드비즈신부가 조창 폐지후 폐허가 된 상태에서 바닷길의 안녕을 빌던 신당만 남아 사람들이 귀신나온다고 두려워하던 조창터를
매입하여 최초에는 한옥식으로 성당을 준공하였다가 1920년에 드비즈신부가직접 설계한 현대의 고딕 양식의 성당과사제관을 완공하였다.


집을 지을때 주춧돌위에 기둥을 세우고 대들보를 얹는 한국의 전통방식과 달리 기초 다진 후 사방에 벽부터
쌓는 것도 희한한 구경거리였다고 한다.
그상상을 하니 절로 웃음이 난다.

공세리성당은 '이명래고약의 발원지' 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놀랐다.
종기가 흔하던 그 시절에 드비즈신부가 자신만의 방법으로 고약을 만들어 무료로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이명래 고약의 원개발자 드비즈 신부는 자신을 도와주었던 이명래 (요한)에게 전수하여 전국적으로 보급하였다고 한다.
또한 공세리 성당에는 신유,명인박해때 순교한 32위의 순교자를 모신 성지이기도하다.



이렇게 수많은 아픔의 역사와 사연을 안고 있는 공세리 성당은 지금은 빼어난 아름다움으로 이곳을
찾은 순례자나 관광객에게 경건하며 차분한 마음의 안식처가 되고있다.

공세리성당 성지 박물관은 아담하면서도 아름답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저 계단은 빨간 벽돌과 어울려 아름다움을 넘어 화려하기까지 하다.

성지박물관의 창에 보이는 한복을 입고있는 성도들(?)의 모습은 사뭇 정겹기까지하다.
창문조차도 그냥두지 않았다.

공세리성당 성지 박물관 뒤에서 본 빨간 벽돌이 세월을 덧입어 더 아름답다.


공세리 성당을 한바퀴도는 오솔길은 '십자가의길'로 예수 수난의 모슾을 담아내고 있다.


오솔길을 조용히 걷다보면 경건해지며 그 고통의 길에 묵상하게 된다.


성당 아랫길로 토굴처럼 만든어진 성체조배실이 있는데
굳게 닫힌 문앞에서 왠지 엄숙해진다.

몇백년의 역사와 함께한 보호수들의 둘레와 크기를 보노라면 경외심마저 든다.


속살을 드러내고 영겹의 세월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일명 문지기나무인 팽나무의 뿌리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나뭇가지 사이로 해가 지고있다.
이제는 떠나야할 시간.
아름답고 단아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경건하며 거룩하며
그러나 차분하기까지한 이 공세리 성당이 이제 그만 돌아가라 한다.
부러 벚꽃엔딩이 끝난 자리에 왔기에 조용하게 맘껏 힐링하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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